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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붉은 꽃들이 피어나 산을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항상 나는 이상해진다. 이상해지는 것은 몸과 머리 모두가 그랬다. 그게 언제 부터 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예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산이 물들고 햇빛이 굴 밖을 따뜻하게 데워놓을 무렵부터 날개죽지가 간지러워지고 몸이 배배 꼬였다. 견딜수 없이 무언가 끓는 느낌에 평소 같으면 굴에 숨어지낼 시간에도 정처 없이 하늘을 헤집고 다녔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지배하는 이 시기는 햇빛이 달군 굴 앞의 너른 바위가 따뜻해지다 못해 뜨거워질 무렵 스물스물 자취를 감추곤 했다. 알에서 태어난 나를 처음 마주하고, 나와 같은 흰 날개를 가졌던 동족들은 이런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하늘을 겨우 날 수 있기도 전에 사라져 버..
펜을 손가락 위에서 돌렸다. 진료중에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때 만큼은 자제가 되지 않았다. 초진기록지를 흝어내려가면서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은 같은 곳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억지로 우겨넣기에 바빴다. 사실 별다른 특이사항 같은 것은 없었다. 이름이 윤정한이라는 것 말고는. "가능한지가 알고 싶어서 왔어." 그는 날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이런 환자는 가끔 있었다. 동요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펜을 돌리는 속도는 여전히 일정했다. 마음속에 차오른 분노와 긴장이 연필을 돌리며 일정이나마 해소되는 충동의 조절. 뭐 그런거였다. 삼촌. 삼촌을 생각하자 연필이 굴러 떨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뇌의 기질적인 병변이나, 신경학적인 이상만 배제..